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의 전당이자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품고 있는 공간입니다. 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삼국시대의 유물부터 고려, 조선의 화려한 공예품까지 감탄을 자아내게 되는데요.
특히 상설전시실 내부에 자리한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실’에 들어서면 국내 다른 전시실과는 사뭇 다른 이국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불교 미술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해외 유물 중 상당수는 개인 컬렉터의 기증이나 박물관의 정당한 예산 구매를 통해 들어온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 중앙아시아실을 채우고 있는 엄청난 수량과 최고급 퀄리티의 유물들은 그 입수 경로가 조금 특별하다 못해, 읽다 보면 탄식이 나오는 뼈아픈 근대사의 소용돌이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중앙아시아 위구르 지역 유물이 어떻게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간간이 제기되는 ‘반환 논란’의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지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 유물 핵심 요약표
| 항목 | 상세 정보 및 안내 |
|---|---|
| 전시관 위치 |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실 (서화관/세계문화관 라인) |
| 유물 출처 |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 타클라마칸 사막 일대) |
| 수집 주체 | 일본 니시혼간지 주지 오타니 고즈이 (제1~3차 오타니 탐험대) |
| 국내 유입 경로 | 오타니 수집품 매입자(구하라 후사노스케) -> 조선총독부 박물관 기증 -> 1945년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귀속 |
| 유물 성격 | 4~8세기 고대 실크로드 오아시스 도시들의 불교 벽화, 회화, 공예품 등 |
| 반환 논란 요약 | 불법 약탈 문화재라는 시각이 있으나, 문화유적의 역사적 주체성과 현 중국(위구르 자치구) 통치 상황으로 인해 반환 불가 상태 |
- “기증도 구매도 아니다? 오타니 탐험대와 조선 철도의 검은 커넥션”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이 소유한 중앙아시아 유물들은 대부분 19, 20세기 서유럽(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의 제국주의 탐험가들이 실크로드 일대를 누비며 발굴하거나 반출해 간 것들입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중앙아시아 유물들은 서유럽이 아닌, 일본에 의해 수집되었다가 한국에 남게 된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유럽의 학자들이 중앙아시아 탐험으로 학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이에 자극을 받은 일본의 종교인이자 탐험가였던 니시혼간지 주지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는 총 3차에 걸쳐 대규모 탐험대를 중앙아시아로 파견했습니다. 이들은 실크로드 일대(투루판, 쿠차 등)의 유적지를 휩쓸며 무려 5,000점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고대 유물을 약탈하듯 쓸어 담아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이후 오타니는 재정난에 빠지게 되면서 자신이 수집한 방대한 유물들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일본의 거대 자본가이자 조선의 철도 부설 및 광산 개발 권리를 쥐고 있던 구하라 후사노스케였습니다.
구하라는 오타니가 수집한 이 소중한 중앙아시아 유물 일체를 거액을 주고 사들였고, 이를 조선 총독부 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조선인들의 고혈을 짜내며 철도 부설권을 따내는 대가로 사들인 문화재들이 식민지 조선의 박물관 수장고를 채우게 된 것입니다.
만약 1945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지 않았거나, 조선총독부가 유물을 일본 본토로 안전하게 빼돌렸다면 이 유물들은 도쿄 국립박물관 등에 흩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동시에 일본인들이 황급히 도망치듯 한반도를 떠나면서(‘빤스런’), 이 유물들은 조선총독부 수장고에 고스란히 남아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정부의 소유로 귀속되는 역사적 반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 “약탈 문화재이니 위구르에 돌려줘야 할까? 반환 목소리가 묻히는 이유”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을 관람하다 보면 가끔 이런 의문을 품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 유물들은 일본인들이 타국에서 강제로 약탈해 온 불법 문화재인데, 원래 주인이 있는 위구르 지역으로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맞지 않나?” 하는 의견이죠.
실제로 문화재 반환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겉보기에는 맞는 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유물 반환 이슈가 국제 사회나 학계에서 전혀 힘을 받지 못하고 조용히 묻히는 데에는 명확하고 강력한 현실적 이유가 존재합니다.
- 첫째, 유물의 역사적·민족적 주체성의 괴리:
-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유물들은 대부분 4세기에서 8세기 사이, 실크로드 오아시스 도시들(고창국, 쿠차 등)에서 꽃피웠던 ‘불교 문화 유물’입니다. 현재 이 지역에 거주하는 위구르인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튀르크계 민족으로, 과거 이 불교 유물을 만들고 향유했던 고대 인도-유럽계(토하라인, 소그드인 등) 원주민들과는 혈통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 둘째, 반환의 귀착지가 결국 ‘중국 정부’가 된다는 딜레마:
- 설령 우리가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 이 유물들을 현재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돌려보낸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순간 이 유물들은 위구르인들의 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위구르인들을 강하게 탄압하고 역사·문화적 말살 정책을 펼치는 중국 공산당 정부(중화인민공화국)의 손아귀에 들어가 국유화되거나 분산될 확률이 100%에 수렴합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역사적 맥락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이 소장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유물들은 단순한 ‘약탈품 반환’의 프레임으로 접근하기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철저한 보존 과학을 바탕으로 안전하게 관리하고 전 세계에 그 역사적 가치를 알리고 있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최선의 보존 방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을 방문하신다면 단순한 보물 구경을 넘어, 100여 년 전 제국주의 열강과 일제강점기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실크로드의 흔적이라는 묵직한 서사를 함께 떠올려보세요. 전시관 내부의 조명과 흙벽화의 질감을 음미하며 관람하시면 훨씬 깊이 있는 시간여행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Q1.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유물은 법적으로 대한민국 소유가 확실한가?
A1. 네, 100% 대한민국 정부의 합법적 소유 자산입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조선총독부에 남아 있던 모든 문화재 및 재산은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되었으며, 국제법상 승계 및 소유권에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습니다.
Q2. 위구르 자치구 등 현지에서 공식적으로 반환을 요구한 적이 있나?
A2. 과거 중국 정부나 관련 학술 단체 차원에서 해외에 유출된 실크로드 유물들에 대한 전반적인 환수 목소리를 낸 적은 간헐적으로 있으나,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을 상대로 공식적이고 구체적인 국가 간 반환 소송이나 외교적 압박이 들어온 적은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역사적·종교적 주체성 문제와 맞물려 실효성이 낮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