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마지막 숨에 터져나온 샹베르탱




소주보다 , 막걸리나 맥주, 그리고 위스키보다 와인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문득 어쩌다가 Google 알고리즘이 알려준 나폴레옹과, 그리고 와인과 관련된 칼럼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사진 나폴레옹이라고 한다면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물이 기도하고 프랑스하면 자야 하는 음식 식문화가 발달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와인을 빼놓을 수 없죠.


그중에서도 나폴레온 관련된 와인들은 시간이 흘러도 종종 환급되는 종류가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시되는 와인들이 하나 둘 정도는 있지 않았나? 싶은 기억이 문득 떠오르네요.

간단하게 일부분만을 복사해서 뿐이지만 링크를 통해 원문 전체를 한 번 천천히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숨에 터져나온 샹베르탱

“샹베르탱…. 조제핀.” 1821년 5월 5일, 아프리카대륙에서 서쪽으로 1,900km 떨어진 세인트헬레나섬에서 나폴레옹은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는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알고는 샹베르탱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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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격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

프랑스 코르시카섬의 포도밭 전경. 나폴레옹의 고향으로, 그가 태어나기 1년 전까지는 제노바공화국령이었다. 포도산지로 유명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샹베르탱…. 조제핀.”

1821년 5월 5일, 아프리카대륙에서 서쪽으로 1,900km 떨어진 세인트헬레나섬에서 나폴레옹은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는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알고는 샹베르탱을 마시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과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마지막 숨에 담고는 눈을 감았다.

사실 그의 전기에는 나폴레옹이 “프랑스, 군대, 군대의 수장, 조제핀”이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나온다. 나폴레옹의 곁을 지킨 베르트랑의 일기에 따르면 그는 생을 마감하기 며칠 전 커피 한 모금을 마시게 해달라고 애타게 간청했다.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자크 루이 다비드 작(作), 루브르박물관 소장. 위키미디어

포병장교, 부르고뉴… 나폴레옹 와인 사랑의 시작

나폴레옹과 와인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그는 프랑스 코르시카 아작시오 마을에서 8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만 열 살이 되던 해 프랑스 본토로 건너가 부르고뉴 오툉 학교를 거쳐 상파뉴의 브리엔 유년 군사학교에 다녔다. 그곳에서 5년 동안 기숙하며 학업을 하는 동안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민족주의적 색채와 특이한 억양 탓에 다른 학생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소년 나폴레옹은 고대 군사 지도자들 이야기와 역사책에 빠져 지냈다.

그러고 보면 알렉상드르 뒤마의 이 말이 단순히 샹베르탱 예찬만은 아닌 듯하다.

나폴레옹이 와인잔에 어린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초급장교 시절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 기회가 온 것이다. 왕당파가 프랑스 남부 툴롱항으로 영국군을 불러들여 혁명정부에 맞섰다. 그는 혁명정부의 편에 서서 영국군을 몰아내고 툴롱항을 되찾았다. 이어 폴 바라스의 추천으로 파리에서 일어난 왕당파의 봉기까지 진압해 출세의 기반을 다졌다.

조제핀과 샹베르탱. 클로 드 베즈 그랑 크뤼 밭에서 생산된 샹베르탱은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하던 와인이다. 그는 조제핀에게서 샹베르탱 향기를 느꼈다고 한다. ‘조제핀 초상’, 안드레아 아피아니 작(作). 위키미디어, 와이너리 홈페이지

“조제핀 샹베르탱 향기에 매료”

이때 나폴레옹은 운명의 여성을 만난다. 혁명정부의 실력자이자 나폴레옹의 후원자인 폴 바라스의 애인 로즈 드 보아르네. 바로 그 유명한 조제핀이다. 나폴레옹은 그녀에게서 풍기는 샹베르탱 향기에 매료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그녀는 주로 샴페인을 마셨다고 한다. 모엣샹동 샴페인하우스에는 1807년 1월 조제핀이 방문해 샴페인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조제핀은 카리브해 마르티니크섬에서 태어났다. 열여섯에 파리로 건너와 보아르네 장군과 결혼해 두 명의 자녀를 낳았다. 하지만 혁명 피바람 속에 보아르네 장군은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말았다. 그 후 조제핀은 사교계에 진출해 폴 바라스의 애인이 되었고, 이윽고 나폴레옹의 마음마저 사로잡았다.

둘은 결혼했으나 허니문은 잠시였다. 결혼식 이틀 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원정에 나섰다. 나폴레옹은 전장에서 조제핀에게 여러 차례 연서를 보냈다. 그런데 조제핀은 편지 전달자인 장교들과 샴페인을 즐기며 뜨거운 밤을 보냈다고 한다.

정복의 길에 찾은 와인셀러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그는 조제핀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다. 조제핀은 1814년 5월 샤토 말메종에서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보나파르트… 엘바… 로마 왕”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크게 충격받은 나머지 이틀 동안 방 안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그가 한 말을 보면, 끝내 조제핀을 사랑했던 자신의 마음마저 속일 수는 없었던 듯하다. “단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소. 어떤 여인도 그대만큼 사랑하지 않았소.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오.” 자신의 몰락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지내야 했던 엘바섬은 나폴레옹에게는 지옥과 같았으리라.

나폴레옹과 관계된 와인들. 코르시카 아작시오, 샹베르탱, 모엣샹동 브륏 임페리얼, 엘바 알리아티코 파시토, 뱅 드 콩스탕스. 각 와이너리 홈페이지 캡처

패전 후 유배된 섬에 만든 포도원

그런데 섬에 유배된 300여 일 동안 그는 섬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 엘바섬 사람들은 무척 건강했다. 나폴레옹은 이를 엘바섬의 와인 덕분이라고 여겨, 섬에 포도원을 만들기도 했다. 엘바섬은 지금도 와인이 유명하다. 알레아티코 품종으로 파시토 스타일로 만든 스위트 레드 와인이 특산품이다. 2011년에는 ‘엘바 알레아티코 파시토 DOCG’로 지정되었다.

1815년 2월 26일 나폴레옹은 영국군의 감시를 피해 엘바섬을 탈출했다. ‘나폴레옹 루트’를 따라 추종자들과 함께 3월 20일 파리로 입성한다.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루이 18세는 도주했다. 빈회의 중이던 동맹국들은 회의를 중단하고 나폴레옹에 맞설 대책을 세웠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았다. 돌아보면 한평생 전쟁 속에서 살지 않았던가. 그는 워털루로 향한 진군을 멈출 수 없었다. 결국 운명의 전장에서 그는 영국의 웰링턴이 이끄는 동맹군에 패하고 말았다. 엘바섬을 탈출한 지 100여 일 만에 나폴레옹은 황제퇴위문서에 이름을 적어야 했다. 영국의 포로로 다시 유배길을 떠났다.